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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경험글

출장 에피소드

by 명주(明珠) 2026. 6. 2.

직장 업무로 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쳐 경상도,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쳐 전라도,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를 합쳐 충청도다.

그렇다면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를 합쳐 강원도인데, 왜 도청은 춘천에 있을까?

서울과 더 가까워서일까?
춘천 사람들이 정치력을 발휘했을까?
물론 진실은 따로 있겠지만, 출장길에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다 제주도는 또 뭘까?

제(濟)는 건널 제,
주(州)는 고을 주.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이미 비행기 티켓을 요구한다.

원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제주 메종글래드 호텔.

처음에는 제주 방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메종(Maison)은 프랑스어로 '집',
글래드(Glad)는 영어로 '기쁜'이라는 뜻이다.

결국 "기쁜 집"이다.

한국말로 이름을 지으면 너무 평범하니까 프랑스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은 것 같다.
역시 호텔 이름은 외국어가 섞여야 뭔가 있어 보인다.

직장생활 29년 차.

MBTI가 극 I인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여전히 회식이다.

그것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처음 보는 사람들과 네 시간을 한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하는 회식.

내가 사랑하는 주(主)님과 그들이 사랑하는 주(酒)님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먹고 마시지만,
그들은 마시기만 한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혀가 꼬여간다.

다행히 내 옆에는 같은 비주류이면서도 말하기 능력만큼은 국가대표급인 극 E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나는 적당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말이 끝날 즈음,

"아, 그러셨어요?"

질문 하나만 던지면 다시 30분이 흘렀다.

덕분에 무사히 생존했다.

사실 제주도에 출장지를 잡는 이유 중 절반은 관광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협재해수욕장,
오라동 메밀밭.

제주도에는 유채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평창 못지않은 넓은 메밀밭도 있었다.

돌하르방 미술관도 들렀다.

문득 첫째 딸이 네 살 때 함께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계산해 보니 벌써 21년 전이다.

시간은 정말 비행기보다 빠르다.

제주도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흑돼지 삼겹살집에도 갔다.

옛날에는 화장실 아래에서 돼지를 키웠다고 한다.

이유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지금은 물론 금지되어 있다.

유명 맛집이라 인터넷 예약도 어렵다.

예약 후 5분 안에 방문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식당이다.

특이한 점은 연탄불에 고기를 굽는다는 것.

그런데 나는 연탄에 대한 추억이 별로 좋지 않다.

어릴 적에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나 역시 아침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기억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인지 연탄을 보면 추억보다 두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탄이 지금은 맛집의 핵심 경쟁력이 되어 있었다.

어려운 회식을 세 번이나 마치고 원주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하는데 한 젊은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어떤 50대 남성이 들고 있던 검은 캐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가방인데요?"

순간 정적.

가방을 들고 있던 남성은 깜짝 놀라 사과도 잊은 채 다시 비행기 안으로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들고 내려온 가방.

정말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본인도 헷갈릴까 봐 손잡이에 빨간 스카프까지 묶어 놓았는데 정작 그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

나이 탓일까.

그때 버스 안에 갑자기 음악이 울려 퍼졌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기사님이 라디오를 튼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한 아주머니의 휴대전화 알림음이었다.

곧바로 스피커폰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착륙한 지 한참 됐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비행기는 오토바이, 자동차, 버스, 기차보다 사고 확률이 가장 낮은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하늘 높이 올라가면 걸리적거리는 것이 거의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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