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지정의가 있다. 우리는 이성 적으로 생각한다. 사고활동을 통하여 지식을 생산해 낸다. 인류는 지식의 축적을 통하여 현대 문명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감정이 있다. 쾌락, 고통, 두려움, 희망,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도덕적으로 부끄러움도 생긴다.
세상에 있는 물질을 작게 쪼개면 원자 단위까지 내려간다. 우리의 뇌도 결국은 이런 원자 단위의 입자들의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런 입자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의하여 지정의가 생겨나고 통제 받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추론하는 자체가 큰 모순이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나 자체를 기계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은 신은 결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하며 자연스럽지 않게 움직이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물리에서 전자와 같이 작은 입자들조차 매우 부자연스럽고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불확정성원리와 확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균질하고 예측 가능하고 서로 유기적이고 체계적이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자연도 확률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성경은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선언한다.(창 1장 1절) 성경은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들로 가득 찼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걸음의 속도가 제트기처럼 빨랐다면 자연의 법칙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러나 60킬로 몸무게의 성인이 걷는 일은 불가능하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원리는 다소 복잡하다. 일단 가볍다. 또 다리에 기름 성분이 있다. 기름은 물보다 비중이 낮아 물에 뜰 조건이다. 또 하나는 액체 중 가장 표면 장력이 큰 물의 특성 때문에 뜬다.
하나님은 천지뿐 아니라 또 다른 세계도 창조했다. 성경은 간단히 천국, 지옥이라고 한다. 이렇게 제1 자연, 초자연이라 부를 수 있는 제2 자연 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자연도 창조하셨을 수 있다. 이 두 개의 다른 자연을 넘나드는 것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제1 자연에서 생명이 다하여 단절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 모든 세계를 만든 분만은 가능하다. 천지를 만든 분이 천지에 충분히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 제2의 자연에서는 물 위를 걷는 일이 기적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일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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