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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법칙도 거스르는 하나님의 능력!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에스겔37:1-14절)

by 명주(明珠) 2024. 7. 16.

뼈에 대한 인식

본문은 에스겔서 중 가장 유명한 마른 뼈 환상입니다. 우리나라는 뼈에 대하여 혐오감이 없습니다. 외국은 뼈는 버립니다. 우리나라는 뼈를 사랑합니다. 뼈로 요리를 합니다. 대표적인 요리가 사골 국입니다. 사골의 사자는 죽을 사(死)가 아닙니다. 넉 사(四)입니다. 다리 네 개 달린 가축의 다리 뼈를 삶아 먹는다하여 사골입니다. 다른 요리는 할머니뼈다귀 해장국입니다. 외국인들이 이 메뉴를 보고 기겁 했다합니다. 할머니 뼈를 삶아 먹는 식인종 또는 야만족이 아닌가하고 오해했답니다. 또 다른 뼈 요리로는 갈비탕, 도가니탕, 소꼬리 찜, 감자탕입니다. 감자를 많이 넣어서 감자탕이 아니고 돼지 뼈 이름이 감자여서 감자탕입니다.

사람의 뼈구성



사람 뼈는 일반적으로 206개입니다. 갓 태어 난 아기는 300개입니다. 자라면서 합쳐지는 뼈가 있어 206개로 줄어듭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하여 남성의 갈비뼈가 하나 적지 않습니다. 남녀 모두 갈비뼈는 12쌍입니다. “너는 통뼈냐”하며 특권을 누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있습니다. 통뼈는 속이 빈 뼈가 아니고 기골이 장대하고 골 밀도가 높은 사람의 뼈를 말합니다. 반대로 골밀도가 낮으면 골다공증입니다. 통뼈는 할아버지에게서 유전된다 합니다. 뼈 주위는 신경이 아주 많아 다치면 통증이 심합니다. 뼛 속까지 파고드는 아픔,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은 이 때문에 나왔습니다. 시편32편3절을 보면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다른 많은 환상이 있지만 특별히 마른 뼈 환상을 보여준 이유는 이스라엘은 뼈를 빗대어 고통표현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암울하고 고통스런 상태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마른 뼈입니다.

사람의 뼈 구성

에스겔이 본 마른 뼈 환상



본문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에스겔을 사람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갔습니다. 뼈들은 말랐습니다. 영어로 Very Dry입니다. 4절에 마른 뼈들 그리고 7절에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란 말씀을 볼 때 부서진 마른 뼈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206개가 연결되어 사람 형체를 갖춘 뼈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100% 골다 공증 뼈들입니다. 말라비 틀어진 뼈입니다.

이를 본 에스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한 마디로 아주 끔찍하고 등골이 오싹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비참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같이 골짜기는 적막합니다.

마른 뼈가 상징하는 것



하나님이 왜 에스겔에게 마른 뼈 골짜기를 보여 주었을까요? 이유는 본문 11절에 나옵니다. 마른 뼈들의 상태는 현재 이스라엘 상황을 말해 줍니다. 또 본문 12, 13절을 참고하면 이스라엘이 무덤 속에 있다합니다. 소망 없고 멸절이란 표현도 씁습니다.

멸절(destruction)은 꺼질 멸(滅), 끊을 절(絶)입니다. 멸망시켜 없애버림입니다. 성경적으로 멸절의 의미는 언약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이 영원히소망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부터 1,500km 떨어져 있습니다. 겔1:3절은 이곳이 “갈대아 땅 “그발 강 가”로 나옵니다. 끌고 간 왕은 느브갓네살입니다. 그는 1차, 2차에 걸쳐 왕과 귀족을 포함하여 일반 백성들과 군인들, 기술자들까지 끌고갔습니다.

에스겔서 33장21절에는 1,2차뿐 아니라 3차로 잡혀 올 때 상황을 기록합니다. 사로 잡혀 온지 12년 째 되던 해에 또 하나의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왕궁과 돌아갈 집까지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이 시드기야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30개월 동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둘러싸여 성 밖을 못나가서 자녀를 잡아먹어야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에스겔이 5장10절에서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고국에 집이라도 있으면 돌아갈 희망이라도 가질 텐데 희망의 싹마저도 잘린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받는 이유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줍니까? 하나님은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패역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하고 홍해를 건넜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녀를 죽여서 몰렉 우상에게 인신제사도 드렸습니다. (겔16:20-21) 또 입에 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 합니다.(겔22:11,12)

이스라엘이 잡혀 온 곳이 그발 강가입니다. 그발은 “연합”“합쳐짐”이란 뜻으로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끌어 만든 운하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발 강가에 정착한 이유는 운하 공사 노역때문입니다. 포로로 붙잡혀 온 것도 서러운데 날마다 노역에 시달려야했습니다. 이스라엘 상황은 마른 뼈 골짜기와 같고 무덤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에스겔의 출신 배경


에스겔도 마찬가지로 무리들에 끼어 막노동을 했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성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1차 포로 때 잡혀왔고, 에스겔은 2차 때입니다. 에스겔이 잡혀왔을 때는 이미 다니엘은 유명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왕궁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고위직으로 일했습니다. 에스겔은 아닙니다. “ 누구는 왕궁에서 잘먹으며 선지자하고 누구는 공사판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하냐!”는 불만 갔기 쉽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불평이 없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뼈가 살아난다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합니다. 통뼈도 아니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 정면 위배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 또는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자연 상태에서 물질의 변화 또는 에너지의 변화는 항상 무질서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그대로 하겠다는 의도도 담깁니다. “인자야 내가 이 뼈들을 능히 살리게느냐는 질문에 에스겔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하면 믿음 없다 욕먹을 것이고 그렇다고 마른 뼈가 살 수 있다라고 하기도 곤란했습니다. 이 말은 죽이고 살리는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겠다고 작정하면 살린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본문 4절 7절 10절은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마치 산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듯합니다.

고난 받는 에스겔


구약에는 성경을 기록한 16명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만큼 힘들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도 없습니다. 에스겔은 자주 자기 몸을 꽁꽁 묶어서 끌려가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가택연금을 당하고 벙어리가 되기도 합니다.(겔3:24-26) 흙 판에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공격받는 모양을 그려 넣어 백성에게 경고도합니다.(겔4:1-3) 390일을 왼쪽으로 누워서만 지냅니다. (겔4:4-6) 음식을 사람 인분으로 불을 피워 먹으라고도 합니다. 에스겔은 어릴 때 부터 부정한 것은 가까이 하지 않아 도저히 못하겠다하자 소똥으로 바꿔 줍니다.(겔4:9-15) 머리와 수염을 박박 밀기도 합니다.(겔5:1-4) 미친 사람처럼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전하기도 합니다.(겔6:11) 포로처럼 분장하고 도둑처럼 성벽에 구멍을 뚫기도 합니다.(겔12:5) 떨면서 음식도 먹습니다.(겔12:18) 허리가 끊어질듯 탄식하고 울면서 대언하기도 합니다.(겔20:6) 심지어 아내를 죽게 하고 장사도 못 지내게 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슬픔을 속으로 삼키도록 합니다.(겔24:15-24)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


이런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듣자 뼈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무덤 같이 고요했던 뼈들이 소리를 냈습니다. 206개의 뼈들이 알아서 맞춰졌습니다. 그리고 뼈들에 힘줄이 생겼습니다.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덮입니다.(8절) 마른 뼈가 살아 사람 형태로 변하여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10절) 마치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듯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현재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본문 12,13절을 보면 끝까지 하나님은 내 백성들아하고 부릅니다. My people하고 부릅니다. 선지서는 대부분 하나님이 분노하고 징계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회복시켜 줍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BC536년에 포로생활을 끝내고 1차 귀환을 합니다. BC457년에 2차 귀환이 있고, 13년 후인 BC444년에도 3차 귀환이 있습니다. 환상이 환상으로 끝나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바벨론을 무너뜨립니다. 바사제국을 일으켜 고레스왕의 손을 빌어 무너뜨립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의 권능은 하나님의 손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를 손으로 주무릅니다. 본문은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겔37:6)를 반복합니다. 에스겔 전체는 49번 반복됩니다. 세상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에스겔서는 바퀴 환상을 많이 보여줍니다. 황옥 바퀴(겔10:9), 눈 달린 바퀴(겔10:12), 바퀴 안에 바퀴(겔10:10)가 나옵니다. 바퀴는 세상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이 굴린다는 섭리를 상징합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마른 뼈가 2단계를 거쳐 살아납니다. 뼈가 맞춰 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과 가죽이 생기는 것이 1단계입니다. 2단계는 하나님 생기가 들어갑니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르와흐로 호흡, 숨, 바람이란 뜻입니다. 성령님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생기는 창세기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은 생기와 같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살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부터 차단이 된 그 상태를 죽음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기 곧 성령이 없으면 걸어는 다니지만 죽었다고 봅니다. 마태복음 8장 21,22절을 보면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사 지내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죽은 아버지도 죽은 자고 그 아버지를 장사하려는 주변 사람도 다 죽은 자로 봅니다.

마른뼈 환상의 영적 의미



본문14절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5:24,25절도 참고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영접하는 자는 살아납니다.

본문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소리가 났습니다. 고요와 적막이 깨지고 생명이 살아나는 소리가 났습니다. 뼈 206개가 덜그럭 거리며 달라붙는 소리로 요란합니다.

10절을 참고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살아났는데 이들을 군대라고 표현합니다. 그것도 극히 큰 군대, great army입니다. 병사로 군 생활을 힘들게 한 분들은 군대를 싫어합니다. 내가 전역하면 부대를 향하여 오줌도 안 누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군 전역 후 최대 악몽은 군대 다시 들어가는 꿈입니다. 저는 전역한 후 한동안 내무 반 인줄 알고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가 집인 줄 알고 안심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거듭난 무리를 군대라고 표현하니까 썩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딤후2:3절도 성도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표현합니다. 군대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조직입니다. 동호회가 아닙니다. 해병전우회도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엡6:12)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들을 단기선교를 보냅니다.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자랑하듯이 귀신들도 항복했다고 합니다.(눅10:17) 이때 예수님은 사단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말합니다.

제자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도 한 것 뿐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하늘에서 사탄과의 전쟁이 있었고 사탄이 패하여 땅으로 떨어진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18;18절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의 행동은 하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기도 한번 하는 것이 뭔 대수냐고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을 뒤흔드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고, 심방하는 모든 행위는 바로 영적 전쟁의 일환입니다. 대 우주 전쟁입니다. 어벤저스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믿는 성도가 바로 우주 방위군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싸움에 동원된 군대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신자와 사단과의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56절은 “5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란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무기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힐 무기는 없습니다.

본문 3,9,11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인자야 하고 부르십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으로 에스겔을 지칭하지만 또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별칭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깝게는 70년 후에 일어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길게는 500여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2장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의 역사도 예언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일초 이초, 일분 이분, 하루 이틀 순차적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무시간이 십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은 한 눈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를 창세전에 이미 택했다는 말씀도 합니다.(엡1:4) 오늘 본문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 속에 현재 미래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다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정된 미래를 알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새 하늘 새 땅이라 말합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뛰놀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올 것입니다. 해도 없고 상함도 없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날이 올 것입니다.(이사야11:6-9) 이런 세상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몇 년 몇 월 몇 일에 오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무시간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몇 년 몇 월 몇 일에 관심 없으십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이 몇 년 몇 월 몇 일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당신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알바 아니고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1999년은 제가 결혼 한 해입니다. 신혼 꿈에 젖어 사는데 2000년에 세상 종말이 온다고 했습니다. 2000년 이면 결혼 하고 8개월 후였습니다. 물론 주님이 오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래도 신혼의 깨소금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세상이 끝난다 하니 좀 섭섭했습니다. 한 장로 형제님도 신혼집을 방문해서 Y2K니, 환란이니 하시면서 조심스럽게 종말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라면과 생수를 준비해 해 두라 했습니다.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2002 월드컵도 봤습니다. 몇 월 몇 일에 꽂혀서 집 팔고, 땅 팔고,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내년에 100년 만에 홍수 소식을 들어도, 100년 만에 가뭄 소식을 들어도 오늘 논일 밭일을 나갑니다.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오늘 밭에 나가 한 포기의 풀을 뽑고 김매기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님들의 현실이 마른 뼈 골짜기 같으십니까? 마른 뼈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전히 인자야! 내 백성아! 하고 부르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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