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마지막 가정집회는 유난히 따뜻한 밤이었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되자 각 가정이 준비한 음식들을 들고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우리는 김밥 열 줄을 들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 김밥은 흔해 보이지만 나름 ‘오성호텔급’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오이를 설탕·식초·소금에 적당히 절여 넣는 것이 핵심입니다. 재료는 맛살, 햄, 계란, 오이, 단무지. 딱 다섯 가지뿐입니다. 김밥은 겉보기와 달리 요리 중 가장 섬세합니다. 밥의 물 조절부터 식초와 참기름, 소금의 비율, 재료의 배합, 햄을 볶을 때 또 계란을 부칠 때 불 조절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지나갈 수 없습니다. 불이 쎄면 눌러 붙어 쓴 맛이 납니다. 작은 김밥 한 줄에 정성과 균형이라는 단어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김밥 검다고 우습게 보지마라.
우리의 모임 장소는 사천 바닷가에 자리한 신00님의 야심찬 사업 꿈이 담긴 공간입니다. 코로나 19가 발목을 잡긴했지만 교회의 임시 예배처로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총과 균과 쇠가 좌지우지 한다고 합니다. 그 균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 균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고추밭, 옥수수밭, 감자밭, 그리고 들깨밭, 땅콩밭으로 쓰입니다. 감자밭 프랭카드 앞에 앉아 두 번정도 말씀 교제한 기억이 남아 있어 이 자리에 서기만 해도 묘한 정겨움이 올라옵니다.
밖에서는 숯불 피우고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불가에 올렸습니다. 윷놀이 중간에 가지고 온 호일을 젖히자 고소한 냄새와 김이 피어올랐고 맛은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맛 왜 셋? 이웃에서 놀러와 같이 죽음. 과메기는 파와 초장, 그리고 생미역에 싸서 싱싱함과 함께 먹었고, 해물라면이 등장하자 모두가 한 젖가락을 들었습니다. 과일, 닭강정, 뜨끈한 오뎅 국물도 속을 든든히 채워 줬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네 팀—청년 여, 청년 남, 기혼 남, 기혼 여—이 다음달 과일 살 상금을 걸고 윷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특히 ‘서울’과 ‘강릉’ 칸과 빽도가 우리를 즐겁게 했습니다. 모두 “서울”, “강릉!”이라고 외쳤습니다. 첫 판은 세 팀이 모두 빽도를 쳐야 끝나는 지경이되었고 제일 늦게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온 청년형제 팀이 승리 했습니다. 인생은 느려도 승리할 수 있는게 있습니다. 또 인생의 빽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빽도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많습니다.
두번 째 판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낸 팀은 기혼 남성팀이었습니다.^^ 윷이 특별히 잘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개, 걸 정도만 꾸준히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기혼 남성팀의 말은 끝까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큰 도약 없이도 한 칸 한 칸 묵묵히 가더니 결국 1등을 차지했습니다. 다른 세 팀이 잡고 잡히는 그 사이를 뚫었습니다.
이날 윷판의 진정한 인기스타는 4살 ‘윤슬’이였습니다. 우리가 계산하고 고민할 때마다 윤슬이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와 아무 욕심없이 대신 윷을 던졌습니다. 작은 손에서 던져진 윷은 이상하리만큼 팀마다 좋은 흐름을 만들어내어, 우리는 “윤슬아, 우리 팀도 부탁해!” 하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사천 바닷바람보다 더 시원하게 우리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쏜살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 밤만큼은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고 웃었습니다.
바닷가의 겨울밤 공기, 숯불의 붉은 빛, 따끈한 라면 냄새, 달콤한 과일들, 김밥과 과메기의 향, 그리고 윷판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잊기 어려운 겨울 밤의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오성급 김밥 열 줄보다 값진 것은,
함께 나눈 웃음과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온기가 새해의 첫날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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