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방탄성도(고린도전서15:1-10)
방탄은 총알을 막는다 입니다. BTS 방탄소년단도 같은 뜻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습니다. 요한일서5장1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우리를 방탄성도로 만들어 준다는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외국 노부부의 부활 신앙 예화
외국 부부가 있었습니다. 40년을 같이 산 노부부가 성지 순례를 갔답니다. 예루살렘에서 불행하게도 부인이 죽습니다. 장례를 치러야하는데 고국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장의사가 남편에게 제안을 합니다. “부인 시신을 고국으로 운구하려면 5000 달러가 듭니다.” 그러나 “이곳 예루살렘 성지에 묻으면 단돈 150달러입니다.” 말을 들은 남편은 펄쩍 뛰면서 말합니다.“아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5,000달러든 50,000만 달러든 내가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고국으로 가서 장례를 치르겠다.”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의사는 “평소 살아 계실 때 얼마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컸으면 저렇게 펄쩍뛰실까?”하면서 칭찬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의 얘기가 이렇습니다. “여기는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한 땅이라면서요?” “만에 하나 부인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잖아요? 이제 겨우 자유를 얻었는데^^” “반드시 데려 가야 합니다.”고했답니다. 부활신앙은 확고한 남편인데 방향이 잘못됐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의 부활 신앙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장사 지낸 분이 누구죠? 아리마데 요셉입니다. 그는 부자고 저명한 공회의원입니다. 그는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 시신을 안치합니다. 새 무덤 조성하려면 꾀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를 안 친구가 찾아와 권면합니다. “아니 자네 미치지 않았느냐?”“그 비싼 돈 주고 만든 무덤에 처형당한 죄수를 안치하다니!”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느냐““그러다 정치적인 생명도 끊어지고 평생 비난받으며 어떻게 살려고 하냐고”하고 핀잔을 주었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리마데 요셉이 하는 말이 “야! 이 친구야 평생은 무슨 평생이야! 딱 3일 이면 끝나. 3일 이면 방빼!” 이렇게 말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남의 눈이 두려워 계속 제자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 죽음 지켜보고 빌라도 총독을 찾아갑니다. 성경은 그는 “당돌하게” 시신을 달라했다 합니다.(막15:43) 그는 더 이상 숨지 않고 방탄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따가운 시선도 그를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아리마데 요셉을 만들어낸 인물이라 합니다. 거짓 인물이라 합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것이 거짓인물 만들려면 무명의 사람을 끌어다 써야 탄로가 나지 않습니다. 유명한 공회의원 이름을 갔다 썼습니다. 특정단체에 속한 인물의 이름을 쓰면 공회에 가서 물어보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만들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필요한 부활 신앙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코린티아제스타이(corinthiazestai)’란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한다.란 뜻입니다. 좋은 뜻이 아닙니다. “저촌놈”과같이 욕하는 말입니다. 속되게 말하면 “저 고린도 놈~”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코린티아제스타이는 “방탕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으면 ”코린티아제스타이“란 말이 만들어졌겠습니까? 여기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문제 중 한 가지가 부활 문제입니다. 당시 교회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딤후2:17-18 호메내오와 빌레도같은 사람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침례 받을 때 이미 일어났다. 영적으로 이미 부활했다. 이제 끝났다. 몸이 다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몸은 부정하기 때문에 살아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 신앙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기초가 없어집니다. 부활이 없는데 한 세상 고생하면서 살 필요도 없습니다. 최대한 살아 있을 때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예언된 일이고 증인들도 많고 자신이 직접 보았음을 증거합니다. 사도바울 잘 아시듯이 순교까지 한 분입니다. 헛것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를 보았기 때문에 1세기 부활의 증인들은 기꺼이 순교했습니다.
복음이란
1절을 보십시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부활복음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전제합니다. 뭔가 쇼킹하고, 신비운 것이 아니란 것이죠? 이미 전에 다 전해준 내용입니다. 본문에 ‘알게 한다’는 것은 ‘Remind’로서 ‘다시 기억하도록 한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자꾸 찾고 추구하기 쉽습니다. 히6장2절은 권면합니다.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특히 이단들이 기초를 다시 닦습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내용을 바꾸어서합니다. 당시는 영지주의 자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이들은 영과 육을 분리해서 뭐는 이미 부활했고 뭐는 안했고 하면서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내용을 비비꼬고, 비틀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면 이미 부활신앙의 기초위에 서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 시킵니다.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헛되이 믿는다는 것은 부활 신앙이 현실에서 힘을 못 씀을 말합니다. 부활 믿음 효험이 제로인 상태입니다. 부활신앙이 방탄 역할을 제대로 못함입니다. 사탄이 쏘는 두려움, 염려, 불안의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고 괴로워함을 말합니다. 헛되지 않은 믿음의 사람 구약 시대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아브라함이 말년에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가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명령입니다. 아들을 어떻게 자기 손으로 죽입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식인종이 되셨나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기록은 그가 인간적으로 갈등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삭이 똘망 똘망한 눈으로 처다보며 “아빠 제물은 어디있어요?”하고 물었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히11:19절은 그의 헛되지 않은 부활믿음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줄로 생각했다.”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헛되이 믿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랍니다. 말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를 들겠습니다. 직장에서 위에 과장님이 반복한 말이있습니다. 본인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자기한테 한 유언이 있답니다. “교회를 꼭 가라!”였답니다. 이 한마디가 평생 가슴에 남아서 잊혀 지지 않는다고 언젠가는 교회에 가야지하고 말하곤 합니다. 본문에 말을 지킨다는 것은 영어로 “Keep”입니다. 축구에 골키퍼 연상하셔도 됩니다. 공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른 뜻은 굳게 붙잡으라. 입니다.(hold firmly) 떠내려가지 않게 꽉 붙잡는 것을 말하죠? 이렇게 말씀을 “keep"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으리라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현재적으로 구원받은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지키고, 붙잡고, 다시 기억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굳게 붙잡는 다는 의미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굳게 지키고 붙잡을 말씀은 무엇입니까? 3,4절을 참고합니다.“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잡한 내용 없습니다. 바울이 창작했거나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받아서 전한 내용입니다.
성경대로의 의미
본문에는 성경대로가 두 번 나옵니다. 성경에 큰 도로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로는 의존명사로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란 뜻입니다. 엿장수 맘대로가 아닙니다. 학자들은 구약에서 300번 이상 예수님 부활이 예언되었다고 합니다. 부활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대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성경에 장차 우리 몸도 부활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면 그 성경대로 우리도 부활함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기절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훼손하려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고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나셨다. 기절설이 있습니다. 졸도하는 약물을 먹여서 졸도했다 깨어났다는 졸도 약물설도 있습니다. 또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고 부활했다고 거짓말한다. 도둑설도 있습니다. 예수님 잠깐 탈진했다가 깨어났다는 탈진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부정하면 부활도 당연히 부정되는 것이니까 정적들은 황당한 설을 많이 주장합니다. 기절설, 졸도설, 약물설, 도둑설, 탈진설 다 터무니없는 설들입니다.
확실히 죽었다는 의학적 근거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예수님 확실히 죽으셨다는 의학적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먼저 예수님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나옵니다. 이 내용은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합니다. “hematohidrosis”로 발음합니다. 혈한증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 하는 화학성분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땀과 함께 피가 섞여 나옵니다.
저혈량성 쇼크
또 예수님 십자가 지시기 전 채찍에 맞았습니다. 채찍 39개의 가닥으로 만들었고 끝에는 쇠구슬이나 뼛조각을 달아서 한번 때리면 살점이 뜯겨나갑니다. 피도 많이 흐릅니다. 피가 많이 나면 의학적으로 “저혈량성 쇼크”가 옵니다. “저혈량성 쇼크”가 오면 4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펌 푸질 못합니다. 두 번째는 혈압이 떨어져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절 합니다. 세 번째는 신장이 조금이라도 피를 아끼려고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지합니다. 네 번째는 흘린 피를 보충하기위해서 수분이 필요해서 목이 아주 마르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오르시다가 여러 번 쓰러지며 기절합니다. 또 계속 목마르다고 호소를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 다 의학적인 근거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너무 고통스런 처형방법이어서 마땅히 표현할 단어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신조어를 만들었답니다. “십자가로부터” (Excruciating) 고유명사를 만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면 팔이 6인치 정도 늘어나고 어깨가 탈골됩니다. 근육이 횡경막을 눌러서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숨 내쉬지 못하게 만든답니다. 십자가상에서 숨을 내쉬려고 몸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들어 올릴 때 마다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못 들어 올리면 호흡수가 점점 줄면서 질식사 합니다. 질식사를 하면 심장 주위 막에 액체가 고입니다. 이걸 의학용어로 심낭삼출이라 합니다. 폐 주위에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걸 늑막삼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요19:34) 로마 군병들 사람 죽이는 데는 전문가들입니다. 또 이들이 십사가 상에 살아 있는 예수님을 끌어 내렸거나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실패했다면 목숨을 내놔야합니다. 이런 의학적인 근거와 정황을 볼 때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확실히 묻혔습니다.
십자가형의 고통에 대하겨
예수님 이렇게 혈한증, 저혈량성 쇼크, 질식, 심낭삼출, 늑막삼출을 겪으면서 죽은 이유가 무엇이라 합니까? 우리 죄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고 의를 전가 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잘 말해주는 말씀이 레위기 16장 8절입니다. 아사셀 염소가 나옵니다. 당시는 속죄를 위해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뽑아서 한 마리는 피를 뽑아 제단에 뿌렸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머리에 안수를 했답니다. 안수하는 이유는 백성들의 1년 동안 진 죄를 다 염소에게 뒤집어씌우는 행위입니다. 안수 후 염소를 몰고 광야로 나갔답니다. 사람들은 이 염소가 광야로 멀리 안 보이는 데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모든 죄가 사라졌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합니다. 아사셀의 뜻은 “완전한 제거, 다 내려놓음, 멀리 가버리게 내버려 둠”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영원히 아사셀 합니다. 이런 자들은 사단이 더 이상 죄에 대한 정죄로 우리를 넘어지게 못합니다.
부활(復活)이 한자로는 다시 부 살활 자입니다. 다시 산다는 뜻입니다. 원어의 뜻도 “again”이란 뜻이 담겨 있어서 “다시 일어난다,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부활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는 가수 김종국 같은 사람 세 명이 굴려야 겨우 굴러갈 수 있는 큰 돌로 막았습니다. 인봉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부활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목격자들이 많습니다. 구약에는 증인 2명만 있으면 사실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본 증인이 몇 명입니까? 5-8절을 보십시오. 본문에 오백여~~ 형제는 오백 명이 넘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보면 부활증인 더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 도상 제자 2명입니다. 도합 517명이상입니다. 증인 2명만 있어도 되는데 248배나 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부활 부정하는 자들은 환상을 봤다는 환상설, 최면이 걸렸다는 최면설도 주장합니다. 그런데 환상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집단적으로 환상을 보게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최면도 병원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사람에게만 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주에 걸쳐서, 장소도 다양하고 기간도 40일 동안 계속 같은 환상과 최면에 걸릴 수는 없습니다. 말이 안 되는 설들입니다. 본문에 이 환상설 아닌 걸 누가 증명합니까? 야고보입니다. 예수님하고 30여년을 같이 한집에 살았습니다. 형님 못 알아 볼 리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직접 목격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3차에 걸쳐 전도여행하며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합니다. 전도여행은 AD45년에 시작해서 AD67년에 끝납니다. 22년간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간증 내용 항상 일치합니다. 진술이 결코 오락가락하지 않습니다.(행9:1-11, 행22:6-11 행26:12-18) 진술이 한결같으면 사실임을 말합니다.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이 정말 사실이란 마지막 증거는 부활의 증인들의 삶입니다. 9-10절입니다. 바울 예수님의 원수 노릇하다가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원수도 회개시켜 귀하게 쓰는 하나님의 은혜에 바울은 감동했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수고를 감당합니다. 바울 여행거리 20,000Km정도 입니다. 지구둘레 40,000 Km입니다. 지구를 약 반 바퀴를 걸어서 여행 한 셈 입니다. 이 거리는 사람이 여행할 거리가 아니랍니다.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설 때 한없이 낮은 자신을 말합니다. 신앙인격은 커질수록 겸손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년에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까지 낮춥니다. 바울은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
부활신앙은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줍니다. 오늘 본문6절하반절을 보면 죽음을 뭐라고 하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입니다. 잠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41년간 일한 간호사이면서 작가인 전지은 씨 인터뷰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수없이 봐오면서 무엇을 느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환자의 얼굴은 굉장히 평온하다. 그래서 그런 표정을 보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라고 합니다. 또 죽을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미안하다, 고마웠다, 용서해라, 사랑한다.”란 말이 제일 많았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감사와 용서를 미루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입니다. 잠이 안와서 문제이지 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잠 자고 나면 몸도 부활합니다. 물론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천사의 수종으로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피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은 없습니다. 다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오늘 제목이 방탄 성도입니다. 방탄차 하나 예를 듭니다. 세계 최고의 방탄차는 벤츠S600가드라고 합니다. 가격이 16억 4천만 원 입니다. 저격수가 쏜 총은 물론 가볍게 막아 줍니다. 로켓, 슈류탄, 헬기 사격 도 다 막아주는 괴물 방탄차라고 합니다. 제가 왜 이 비유를 드는가하면 부활신앙은 바로 이렇게 우리 자신을 방탄시켜 준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부활 신앙으로 굳게 설 때 사단이 쏘는 두려움의 총격, 염려의 로켓탄, 불안의 폭탄 이 못 뚫고 들어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처음엔 방황합니다.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 후 입니다. 우리 자신을 방탄 시켜줄 분은 바로 성령하나님입니다.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가 서두에 요한일서5장18에 말씀드렸듯이 성령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악 한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도 부활신앙에 굳게 서서 방탄 성도가 되어 방탄 차 안에 있는 사람처럼 참 평강을 누리는 삶을 다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저의 메시지는 여기서 줄입니다.-본문 의학 내용은 예수는 역사다(리 스트로벨 저서)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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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을 이기는 부활신앙(고린도전서 15:55-57)
불노초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55-57절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몇 살에 사망했을까요? 100세인가요? 아닙니다. 5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신하들에게 시킵니다. 불로초를 먹으면 몸이 신선같이 변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불로초 찾으러 우리나라에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금강산,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까지 왔습니다. 진시왕도 50이 되자 병에 걸려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인류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생체복사를 통하여 우리와 똑같은 사람도 복제합니다. 제2의 나를 만들고 심장이 망가지면 심장을 꺼내 이식하고, 간이 망가지면 간을 꺼내 이식 가능합니다. 물론 현실화하려면 심각한 윤리문제가 대두됩니다.
뇌까지 이식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듯 합니다. 뇌의 영역은 아직 미지수가 많다합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죽음까지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 아래 인간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도록 정한(창2:17) 이치를 아무도 거스르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
성경에는 육체의 죽음만 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3가지 죽음을 말합니다. 첫째 영적죽음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죄가없는 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 두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감각을 잃고 육적인 감각(五感)만을 쫓아 살게되었습니다. 이 상태를 영적죽음이라 합니다. 두번째 죽음은 이렇게 살다 육체도 늙어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된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죽음 후에 심판받아 영원한 유황 불 못에 떨어지는 죽음 곧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국의 회의론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는 저 세상이 무섭다. " 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은 토머스 홉스와는 반대로 사망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사망에 대하여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또 사망을 의인화해 “사망아 너 까불지 마라!”는 식으로 호통칩니다. 55절을 참고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
56절은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사망이 죄를 쏜다고 했는데 쏘다는 벌이 쏜다는 표현입니다. 말벌에 쏘여본 적 있으십니까? 쏘이면 다음날 뒷목과 어깨까지 부어서 일주일 동안 목을 잘 돌리지 못합니다. 본문에 사망은 바로 이렇게 말벌이 쏘듯이 죄를 쏜다고 합니다. 어떤 죄를 쏩니까? 15:32b참고합니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사망은 육체의 쾌락을 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고상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는 인간이 그저 먹고 마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 하도록 만듭니다. 사망이 쏘는 죄들로는 로마서1장24-31절에 정욕,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무정 무자비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즐기며 살다 무(無)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끝나면 즐길 만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는 삯이 있다고 하죠? 현실적으로는 영혼의 괴로움이 있고 마지막은 사망 입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로 왔습니다.(창2:17, 롬5:12, 롬5:23) 죄가 없으면 사망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고 했는데요. 율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데 있습니다.(롬3:10) 다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 앞에 서면 악한자로 낙인찍힙니다.(롬7:7-13)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사망-죄-율법을 한 세트로 취급합니다.
3일만에 부활한 예수님
고린도전서15:1-11을 참고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고전15:3) 십자가에서 율법이 지적한 모든 정죄를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다 받았습니다.(롬10:4) 그리고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합니다. 부활한 모습을 당시 적어도 513명에게 보입니다. 유대 율법에는 2명만 증인이 있어도 사실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513명의 증인이 있으니 부활은 사실입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없다.”고하는 악한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고전15:33) 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부활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36) 우리 주변에도 다 썩어서 흙이 되었는데 거기에 살이 붙어서 몸이 된다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고 합니다.
사람의 인체는 13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는데 사람이 죽어 흙에 묻히면 세균에 의해 다 분해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다시 모아 부활시킬 수 있을까?하는 질문 합니다. 또 우주여행을 하던 사람들 중에 지구를 벗어 난 후 로켓 사고가 나서 폭발했을 경우에 시신은 공중분해하여 원소들이 온 우주에 떠다닐 텐데 어떻게 부활하겠습니까? 또 어떤 성도는 바다를 항해하다가 죽게 되면 시신이 물에서 썩어 성분들이 5대양에 흩어져 버릴 텐데 어떻게 부활될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고전15:34) 롬4: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쪽으로 일합니다. 시편 139편16절은 하나님은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다 보았다 합니다. 에스겔서 37:1-10을 보면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살아나는 역사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오대양 육대주 또는 우주 밖 어디에 있든 아무 상관없이 부활시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본문 15:12-19절까지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의 모든 요소가 다 헛것이고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이 반드시 있다고 설명 합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또 자신도 날마다 죽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20-54절까지는 부활을 땅의 기준, 썩어 없어지는 혈과 육의 기준으로 보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 식물의 씨를 보면서는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할 수 가 없습니다. 씨만으로는 땅에 묻혀서 대지를 뚫고 올라오게 될 줄기와 입과 화려한 꽃과 달콤한 열매를 모릅니다. 부활 할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신령한 몸이 됩니다. 시공을 초월한 몸이됩니다. 그러니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 말라고 합니다.(고전15:33)
부활과 영생
5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합니다. 요한복음5:2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육적인 생각만을 쫓아 살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죄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의 감각을 갖게 됩니다. 육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쫓아 사는 상태가됩니다.
재림
본문에서 우리는 2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이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올 때를 고대하며 살아야합니다.(눅21:27, 고전15:52, 데전4:16) 신자들이 살아 있을 때 오면 휴거를 통해 육체 죽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요한계시록22장20절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합니다. 사도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곧 오시옵소서!”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납니다.
창세기 19:26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기록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망해가는 소돔과 고모라에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히12장1절은 우리를 내리 누르는 무거운 죄, 우리를 얽어매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사망을 이김
두 번째 교훈은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본문에서 사망은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무엇을 쏜다는 표현을 섰습니다. 에베소서 6:16절에서는 이것을 마귀의 불화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불화살을 막는 것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부활 믿음이 사단이 쏘는 화살을 막습니다.
우리도 불화살에 맞아서 신음할 때가 많습니다. 소화라도 잘 안 되면 겁이 덜컥 납니다. 토끼겉은 아이들을 두고 떠나면 어떡 하나 하는 염려까지 갑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히면 생각과 마음이 마비됩니다.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 현상을 통하여 날아오는 어두운 세력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망이 주는 화살에 맞아서 비틀거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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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 8不7行으로 정리(고린도전서13장)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파당, 음행, 성만찬문제, 송사문제,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 자기자랑, 교만 등등입니다. 마치 문제 종합선물세트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교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1장부터 12장까지 하나하나 지적하고 권면합니다. 이어 13장에 사랑장이 나옵니다. 13장은 1~12장에 열거한 문제 해법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신자를 상상합니다. 20개 외국어에 능통합니다. 세계 어느 지역에 가도 의사소통합니다. 말은 천사처럼 잘합니다. 윈스턴 처칠 10배는 잘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업납니다. 세상 비밀을 다 압니다. 논문 몇 편만 쓰면 노벨상을 휩쓸 것입니다. 박학다식합니다. 허블망원경으로 수천 개의 별을 관찰한 결과 우주가 커지는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빠르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지금까지 과학계가 알았던 우주의 나이는 훨씬 젊어진답니다. 빨라지는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합니다. 이분은 금방 밝힐 수 있겠죠. 별명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입니다. 믿음도 강한합니다. 산을 옮기는 파워풀한 믿음입니다. 전 재산을 헌납하여 남을 구제합니다. 타인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줄 압니다. 8가지 능력을 열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능력이 탐납니까? 노벨상, 미래 예측, 백과사전, 외국어, 자기희생?
이런 사람을 한 마디로 슈퍼맨이라고 합니다. 슈퍼맨도 사랑이 없으면 본문은 말짱 “꽝”이라 합니다. 1절에 사랑이 없는 사람을 꽹과리에 비유합니다. 꽹과리는 “꽝쇠”라고 부릅니다. 꽝 소리가 비슷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소망, 가르침, 믿음, 구제, 봉사 등 모든 신앙행위의 밑바탕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꽝입니다. 바울이 정의하는 사랑이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말합니까?
8不7行
4-7절입니다. 사랑은 8불 7행으로 정리합니다. 8不7行은 제가 편의상 붙인 신조어입니다. 주석에 없습니다. 본문에 사랑은 8가지 ‘~아니한다.’ 와 7가지의 ‘~하다.’로 정리합니다. 8불의 첫 번째는 편의상 8-1로합니다. “8-1.시기하지 아니한다. 8-2.자랑하지 아니한다. 8-3.교만하지 아니한다. 8-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 8-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8-6.성내지 아니한다. 8-7.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8-8.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한다.”입니다.
7행은 “7-1. 오래 참는다.(patient) 7-2. 온유하다. 7-3. 진리와 함께 기뻐하다. 7-4.모든 것을 참는다.(always protects) 7-5. 모든 것을 믿는다. 7-6. 모든 것을 바란다. 7-7. 모든 것을 견딘다.(always perseveres) 입니다. ”
이어서 고린도전서13:8-13절은 사랑의 영원성입니다. 앞으로는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없어집니다. 지식도 부분적입니다. 영적인 지식도 구리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듯 희미합니다. 어린 아이 지식 수준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지식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희미하게 보이면 희미하게 보면 됩니다. 억지로 풀다 교만하여 이단, 삼단으로 갑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파벌, 음행, 법정고소, 우상제물, 애찬문제
고린도교회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본문에서 찾겠습니다. 첫째 파벌입니다. 고전1:12절에 바울파(Paul), 아볼로파(Apollos), 게바파(Cephas), 그리스도파(Christ)가 있습니다. 어떤 모임인지 상상력을 발휘 합니다.첫째 바울파는복음의 자유함에 감동 받은 사람 모입니다. 두 번째는 게바파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바울파보다 율법을 강조합니다. 셋째 아볼로파 구약지식과 변증중심 모임입니다. 주로 엘리트 층이 좋아합니다. 이렇게 교회내 계파는 늘 대립합니다. 음식도 '먹느냐 먹지 못하느냐.'로 싸웠습니다. 아볼로파 사람들은 단순 무식한 게바파 사람들을 학문적으로 한 수 아래로 보고 무시합니다. 바울파는 철학 지식을 동원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아볼로파 신자를 말만 번지르르한 구신자라고 깔보았습니다. 구신자(口信者)는 입구(口)자를 써서 입만 살아있는 신자입니다. 익사하면 입만 동동 뜰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게바파 신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따랐던 12제자 출신인 베드로 형님을 자랑스럽게 여겨 다른 파 신자들을 무시합니다. 그리스도파는 우리는 사람은 필요 없고 예수님만 따르는 정통 그리스도파를 자청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파벌 갈등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4개 계파간의 갈등 처방전입니다. 8-1 시기하지 아니한다. 8-2.자랑하지 아니한다. 8-3.교만하지 아니한다. 8-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 8-6.성내지 아니한다. 7-1. 오래 참는다. 7-2. 온유하다.입니다. 계파문제는 처방약이 좀 많습니다. 7가지나 됩니다.
고린도 교회 두 번째 문제는 음행입니다. 고린도 전서 5장1절입니다. 내용은 TV나 영화에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재벌 회장님이 늙어 젊은 여인을 첩으로 들입니다. 불행하게 노회장님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여인은 졸지에 혼자가 됩니다. 그리고 재산을 물려받느니, 주식을 받느니, 주주 총회를 하니 그러다 회장 아들과 눈이 맞아서 부정을 저지릅니다. 고린도 교회도 유사한 일이 있지 않았나 상상해 봅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누구하나 나서서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쉬쉬했습니다. 부도덕한 재벌 아들이 재력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 했을 수 있었겠죠. 음행문제 처방입니다. 8-8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8-7 악한 것을 생각하지 하니 하고 7-3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사랑한다고 하여 무조건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이고 말씀입니다. 말씀의 진리에 기초하여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바로 잡는 사랑도 필요합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곪은 상처를 도려내듯이 말입니다.
세 번째는 세상 법정에 고소 고발한 일입니다.(고전6:1) 돈에 관한 문제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교회 돈 문제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서로 배임, 사기,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합니다. 예배도 방해합니다. 대한민국 형법 제158조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합니다. 고소고발 문제의 처방은 8-8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8-7 악한 것을 생각하지 하니 하고 8-5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7-5모든 것을 믿는다입니다.
네 번째는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되느냐?”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을 참고합니다. 고린도 시에서 유통하는 육류의 전부가 우상의 신전에서 나왔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이 싼 고기를 사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주 가서 이 싼 고기를 사다가 먹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이라 양심에 꺼려하여 먹지 못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고기에 우상이 깨문 이빨자국이라도 있는 거야?”“왜 못먹는 거야?”하며 무시합니다. 반대로 믿음이 약한자들은 “어떻게 신자가 우상재물을 먹어?” 판단합니다. 마음에 상처 받고 실족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고전3:18) 이 문제의 처방은 8-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 8-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8-6.성내지 아니한다. 7-2. 온유하다. 7-4. 모든 것을 참는다.입니다.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만찬과 함께 먹는 애찬에 문제"입니다.(고전11:21~22) 당시에 로마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서로 차별했습니다. A급 음식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위하여 준비 합니다. B급 음식은 덜 가까운 친구들 것입니다. 친구도 A급, B급,C급으로 분류했고 이 분류에 따라 음식도 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천한 음식은 가난한 노예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관습이 고린도교회 애찬 때도 행했습니다. 부자들은 먼저 와 자기들끼리 배불리 먹었습니다. 심지어는 거나하게 술에 취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일 하다가 늦게 와 먹지도 못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먼저 온 사람끼리 닭도리 탕, 제육볶음, 오징어 무침 등은 미리 먹고 나중 온 성도들는 컵라면 몇 개 내놓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애찬을 할 때마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끼리 분쟁합니다. 사람이 먹는 거에 차별받으면 더 화납니다. "누구 입은 입이고 누구 입은 주둥이냐?"하고 싸웠을 것입니다.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행동한 이들에게는 어떤 처방이 내려져야합니까? 8-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 8-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7-1. 오래 참는다. 7-4.모든 것을 참는다.입니다.
문제 해결의 키는 사랑
문제의 마지 막 키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13:13절을 참고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는 사랑 제일 주의여야 한다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우리의 삶에 항상 있어야하는 요소입니다. 믿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망은 우리 삶의 어두움을 밝힙니다. 그렇다고 소망이 삶의 모든 것 아닙니다. 오직 사랑만이 전부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요한1서4:16)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사랑의 분신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사랑의 피요, 예수님의 살은 사랑의 살입니다.(엡2:13) 교회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눈 사랑의 몸입니다.(골1:24, 요15:9) 교회가 멋진 건물이 있고, 훌륭한 직분 자와 교사들이 있고,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되었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문제입니다. 교회 성도간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빼면 시체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제일이 되지 않을 때 고린도교회와 같은 여러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외출했을 때 사람이 머리가 되고 파벌주의가 생깁니다. 내 탓하기 보다는 남 탓하며 대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외출했던 사랑이 돌아올 때 모든 문제는 아침안개와 같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사랑이 없을 때 아이들도 올 곧게 자랄 수 없습니다. 저는 처음 신앙의 마음 문을 열 수 있었던 계기가 예수님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신 말씀입니다.(마8장)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에 감동하였습니다. 사랑이 인생을 기름지게하고 사랑이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사랑이 또한 풍요로운 교회를 이룹니다.
본문은 사랑의 정의를 8不7行으로 묶었지만 우리는 연약하여 반대로 8行7不일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잘 나 보이는 분들을 시기하는 마음 생깁니다. 틈만 보이면 헐뜯는 마음 생깁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자와 같이 거룩한 모습이다가 가정에 가면 헐크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헐뜯고, 헐크로 변하고 한 마디로 “~헐”한 신자이기 쉽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림 마음을 갖지 못하고 오래 참지를 못합니다. 마태복음 8장의 문둥병자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직접 손을 대며 고쳐주었습니다.(마8장) 말로만해도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뜨거운 사랑의 손길을 주었고 거기에도 문둥병자는 감동합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을 배워 사랑 제일주의 교회를 만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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