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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기독교정보

출애굽기 말씀 나눔

by 명주(明珠) 2025. 10. 31.

아기 모세를 물에 띄운 요게벳의 믿음(출애굽기1:8-2:10강해)

오늘은 모세 부모의 믿음에 대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2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배경 말씀은 출애굽기 1장과2장입니다. 출애굽기2장 2절을 참고합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현재 인구는 계속 줍니다. 고3이 매년 줄어 대학에서 뽑으려는 숫자와 역전된 것이 오래 전 입니다. 수십 년 안에 현재 대학이 반으로 줍니다. 지방에 대학이 하나 없어지면 지역경제에도 타격이 옵니다. 예를들면 재학생이 9 천명인 대학의 경제적 가치를 보면 등록금, 생활비 포함 1년에 1천2백억 이상이 지역에 풀립니다. 대학도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평가 때문에 학생을 교육하고 연구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대학 본연의 기능이 훼손 된다고 우려합니다. 우리 미래 수험생들은 좋아집니다. 집 앞까지 학생님들을 모시러 가는 시대가 옵니다.

압제 받기 전 시대 상황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현재와는 반대입니다. 애굽에 총리가된 요셉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합니다. 정착지는 가장 비옥한 땅 곳센입니다. 인구는 70명 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만 명으로 늘었다가 400년 후 모세가 태어날 당시는 남자만 60만입니다.(출12:37) 가족 다 합한 인구는 200 만 명을 넘습니다.

애굽 왕은 걱정합니다. 정치력이 생기면 왕권에 도전하기 쉬웠습니다. 당을 만들어 대표를 대선 호보로 보내고 정권 재창출하기 쉬웠습니다. 애굽 왕은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백성을 노예처럼 부립니다. 강제노역을 시킵니다. 비돔과 라암셋 건축에 동원합니다.(출1:11) 비돔은 국고성이고 라암셋은 스핑크스 같은 거대한 우상입니다.

압제받는 이스라엘

바로 왕의 1차 정책은 인구 말살정책입니다.(출1:14) 이스라엘 남성들이 노역으로 초죽음이되게 만들어 집에가 눕자마자 잠들게 만듭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데 하늘을 못보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2차는 더 잔인한 정책입니다. 이스라엘 산파 2명에게 남자아이 살인교사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는 왕명을 어기고 아이들을 살립니다. 히브리여인들이 모두 건강해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이가 나왔다고 둘러댑니다.(출1:15-20) 2차 정책도 실패하자 이번에 더 잔인한 3차 정책을 씁니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그 부모가 직접 나일강물에 던지라했습니다.(출1:22) 자신이 죽으면 죽었지 어찌 10달을 품어 낳은 아이를 제 손으로 죽입니까? 얼마나 슬프고 잔인한 명령입니까? 바로왕은 정권 유지 목적 때문에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깁니다. 인간의 죄악상은 시대가 변하여도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도 지구 상 어딘가에는 정권유지를 위해 인권을 짓밟는 일이 벌어집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때문에 견딥니다. 자식은 희망이요 살 이유 아닙니까? 성경도 희망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했는데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 싹을 자른 셈입니다.(잠언29:15-18)

당시 부모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도 결혼을 포기했을 듯합니다. 요즈음도 이런 젊은 세대들의 안타까움을 반영하는 신조어 있죠?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합하여 삼포세대라 합니다. 아이의 탄생은 양가 집안의 경사입니다. 당시 아들 탄생 날은 지옥입니다. 모세는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태어납니다.

아이를 숨기는 모세 부모의 믿음

지금부터 아기 모세를 품은 부모의 믿음 생각해봅니다. 어머니는 요게벳으로 ‘하나님은 영광이시다.’란 뜻입니다. 아버지는 아므람입니다.(출 6:18-20). ‘고상한 백성’이란 뜻입니다. 아기 모세를 낳아 품에 안은 요게벳의 소감은 출2:2절에 잘생겼다 표현합니다. 대부분 번역서가 잘생겼다하고 예뻤다, 준수하다고도 합니다. 헬라어는 '아스테이온'으로 '잘 양육된' 혹은 '우아한'이란 뜻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단 말있습니다. 함함하다는 ‘보드랍고 반지르르 하다’입니다. 고슴도치 가시가 보드랍고 반지르르 합니까? 고슴도치 부모만 그렇게 느낍니다. 고슴도치 가시가 무려 1만6000개있습니다. 찔리면 피납니다. 그런데도 부모 눈에는 보드랍게 보입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부모가 단순이 자식의 외모만 보고 왕의 명령을 어겼다고 여김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모가 모세를 숨긴 이유는 히브리서11장23절에 나옵니다. 첫 단어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입니다. by faith입니다. 당시는 바로왕의 말 한마디가 법입니다. 명령을 어기면 죽음이고 직계가족과 친척들도 연대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를 숨긴 실체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늘을 보좌 삼으시고 땅을 발등상 삼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행7:49) 이 믿음이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6:33참고하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증거합니다.

모세를 살리는 과정에서 부모의 어려움 상상해 봅니다. 처음 임신 사실도 숨겼습니다. 태어났을 때는 울음이 새나갈 까봐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아이가 기침만 해도 제트기 소리처럼 들렸겠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임산부의 스트레스는 태아에게 영향을 줍니다. 자궁혈관 수축으로 이어져 태아에게 가는 혈류를 줄입니다. 이는 아이 성장에 방해요소입니다. 최악의 환경에도 잘생긴 아이를 낳은 것은 요게벳이 믿음 안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화를 누렸다는 증거입니다. 평화의 마음에서 지혜가 나옵니다. 이들은 모세가 커가며 울음을 막을 방도가 없자 갈대 바구니에 담아 역청으로 방수처리하고 나일강에 띄울 계획을 짜냅니다.(출2장3절) 그냥 아무 곳에 띄우지 않고 철저한 계산이 따랐습니다. 애굽 공주가 목욕하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합니다.

요세벳과 아므람의 믿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죽은 믿음이 아니고 산 믿음입니다. 관념 속에 믿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대상에게 던지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한분만 바라보고 시퍼런 바다에 온몸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마태14장28~31)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장35절)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울며불며 나일강물에 아들을 던지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현재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살리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사랑입니다.(요한1서 4장18절)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이를 강물에 던져야하는 절박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특히 생존의 문제 앞에서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사업이 망하여, 직장에서 쫓겨나서 길거리에 나 앉으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은퇴하면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걱정합니다. ‘건강보조사업같은 일명 뱀 수렵 사업을 해야 하나? 고추 농사를 지어야 하나?’ 그런데 농사가 가장 어렵답니다. 아니면 ‘꿀이 대세라고하는데 양봉사업을 해야 하나?’ 상상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생존문제와 직결된 일과 겹칠 때가 많습니다. 강단을 섬겨야할 일이 있으면 직장에서 다른 중요한 일과 겹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편은 불편합니다. 이런 것이 모두 믿음이 부족한 요소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

두려움은 뚜렷한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문 앞에 배고픈 백두산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마음이 듭니까? 두 번째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이 주변에 꽉 찼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엔 어떤 느낌입니까? 첫 번째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는 것에 대한 무서움입니다. 이 무서움은 ‘옥상으로 도망가면 된다. ’라고 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면 극복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실체가 없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사탄이 심어주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없앱니다. 계시록21장 8절은 지옥 불 못에 던져질 첫 번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이 두려움은 명상으로 떨칠 수 없습니다. 마인드컨트롤로도 안됩니다. 나의 의지로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쫓아 내야합니다. 딤후1장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요세벳과 아므람도 이런 믿음으로 순간 순간 파고드는 두려움을 물리쳤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시간이 되었으므로 말씀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언급하신 말씀을 찾아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10장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으로 던지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한다는 말도 쓰지만 더 적절한 단어는 경외한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간순간, 막연하게 우리를 찾아와 믿음을 갉아먹는 두려움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저의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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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 출17:8-13절

첫째는 구약의 “훌”입니다. 훌은 출17:8-13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넌 후 아말렉과의 최초의 전투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를 앞세운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입니다. 반면 아말렉은 정규군입니다. 승산은 없었습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듣고 그가 지팡이를 든 팔을 올리면 자기편이 이기고 내려오면 지도록합니다.

지팡이 들고 두 손을 올리고 5분만 있어보십시오. 어깨가 아파옵니다. 특히 팔꿈치 안쪽이 저려옵니다. 15분이 지나면 팔이 빠질 것 같습니다. 제가 해봤습니다. 모세의 나이 80입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의 기도 손의 위치에 따라 수많은 군사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2명을 뽑아야 하는데 콩나물 뽑듯이 막 뽑았겠습니까? 아니면 쌀 한가마니를 농구공처럼 드는 힘만 센 사람을 뽑았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죠? 영적으로도 백성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 뽑았습니다. “품행이 방정하고 타에 모범이 되는”사람입니다. 뽑힌 사람이 아론과 훌입니다. 두 사람이 해가 지도록 모세의 팔을 받쳐 들었습니다. 손만 세워웠겠습니까?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둡니다.

뽑힌 사람 중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훌은 잘 모릅니다. 훌은 아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습니다. 훌이란 이름은 "빛남, 고귀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독불장군의 역사가 아닙니다. 누군가 뒤에서 묵묵히 함께 기도하고 세워주는 훌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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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재앙과 그 의미(출애굽기7장-12장)

본문의 배경 설명 - 인면수심의 범죄 일화

충격적인 뉴스를 먼저 전달합니다. 41살 아버지가 주먹으로 100일된 아들을 때려서 죽였습니다. 이유가 더 충격적입니다. 칭얼대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처음 죄를 은폐 했습니다. 모유 먹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속였습니다. 이들은 최초 신고를 119에 합니다. 경찰에서 이를 수상하게 여겨 부검을 의뢰한 결과 구타한 흔적을 몸에서 발견했습니다. 죄를 추궁한 결과 자백을 받았습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인 부부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들을 지켜본 제3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절대적인 선으로, 어쩌면 지구 밖에서, 아니면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여 심판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렘1:16) 그분이 누구십니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잠언3장6절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12:1은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끔찍한 뉴스가 끊이질 않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집트 왕가

본문에 여호와는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며, 전능한 하나님(출 3:14)의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바로 왕, 신하들, 백성들이 나옵니다. 또 이들 아래서 노예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옵니다.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은 10 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본문의 바로 왕은 역사 기록에 아멘호텝 2세입니다. 활의 명수였다고 합니다. 힘이 장사여서 그의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마차를 타고 달리며 200 발을 쐈다고 합니다. 200 발 다 명중입니다. 백발백중이 아니고 이백 발 이백중입니다. 보통 표적은 나무로 만드는데 구리 강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두께는 7.4 센티입니다. 이것을 화살이 다 뚫고 지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신전 건축을 했고 북쪽 아시아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했다고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애굽은 고대 이집트를 말합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4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고대 이집트 왕조는 3,000년을 유지합니다. 역사적으로 최고로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 왕조입니다. 아멘호텝2세는 18대 왕족 중 한 왕입니다. 세계7대 불가사의 중 첫 번째로 꼽는 피라미드를 건설한 민족입니다. 피라미드 높이 147m 넓이 230m입니다. 피라미드는 건축물이 아니고 무덤입니다. 무덤을 왜 불가사의하게 크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왕 자신을 신격화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를 왕으로 세운 목적

출9:16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로를 왕으로 세우신 목적을 말합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롬9:17절에도 인용한 말씀입니다. 바로는 자기가 잘나서 하나님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웠습니다. 그는 이것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된 노역을 시키고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물에 던져 죽이라고까지 합니다.

이 바로 왕 아래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출12:37절에 나옵니다. 걸을 수 있는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여성과 아이들 합하면 보통 2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이들의 1년 동안 노동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45조 원입니다. 바로 왕이 45조 원의 가치를 순순히 광야로 내보냈겠습니까? 본문에서 바로 왕의 마음이 완악, 완강, 거절했다는 표현이 26번 나옵니다. 처음에는 떠나지 말고 자기 땅에서 그냥 제사하라 합니다.(출8:25) 그 다음은 아이들만은 두고 나가라고 합니다.(출10:7) 나중에는 가축만은 두고 가라고 합니다.(출10:24) 그다으은 모세를 다시 보는 날에는 죽이겠다는 협박 카드까지 씁니다.(출10:28)

바로 왕은 80세 노인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 하나 들고 나타나서 “여호와 하나님 200만 백성을 광야로 내보내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신인데 어딜 가서 뭘 섬기느냐고 합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 애굽 땅에서 자기를 숭배하지 않고 어딜 가느냐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존재인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10번의 재앙이 내려집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바로 왕 한두 번의 강력한 재앙으로 깨끗이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10번까지 재앙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애굽의 많은 우상을 타파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석에는 당시 80여 개의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애굽 우상의 특징은 살아있는 동물을 신으로 섬깁니다.

애굽의 신들

애굽 신은 태양 신, 달 신, 별 신, 하늘 신, 땅 신, 대기의 신, 나일강 신, 비 신, 바람 신, 번개 신이 있었습니다. 조상 신, 치료의 신, 의술의 신 같은 무형의 신도 있었습니다.

 

동물 쪽으로 사자 신, 소 신, 소 신은 암소, 숫소 둘 다 신입니다. 늑대 신, 개 신, 고양이 신, 하마 신, 악어 신, 코브라 신, 개구리 신입니다. 바다 쪽으로 돌고래 신, 물고기 신, 산으로 가면 나무 신, 바위 신입니다. 곤충 쪽으로 파리 신, 이 신, 풍뎅이 신, 메뚜기 신이 있었습니다. 끝으로 하늘 쪽으로 독수리 신, 매 신, 따오기 신입니다. 따오기 신은 우리나라에도 있는 겨울 철새입니다. 부리는 길고 머리는 빨간색입니다. 이 신은 잡으면 안 됩니다. 천연기념물 제198호로 지정했습니다. 잡으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이하와 최대 2억5천만 원의 벌금을 뭅니다. 잘못 드셨다가는 집안 말아 먹을 수 있습니다. 조류 쪽을 드시고 싶으시면 치킨으로 드시기 바랍니다.

최근 우상들

 

요즈음도 우상 많습니다. 요즈음은 외계인 쪽, UFO 쪽 종교가 유행이랍니다. [천국의 문]이란 종교가 있습니다.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근접했을 때 집단 자살을 하면 영혼이 우주선에 바로 승차해서 불멸의 세계로 간다는 교리를 가진 신흥종교입니다. 신도들은 오렌지 주스로 몸을 정결하게 합니다. 다음 보드카를 들이 마십니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자살을 합니다. 이들이 외계에서 온 우주선을 타고 갔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깨어났을 때 유황 불 연못 앞이란 것은 확신합니다.

 

우주에서 비행접시 같이 큰 물체가 지구에 왔다 갔다 하려면 거의 빛의 속도로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주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에 의하면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이가면 질량이 무한대로 커집니다. 시간은 느리게 가다 멈춥니다. 공간도 거의 한 점으로 수축합니다.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외계인이 있어서 비행접시타고 지구로 온다고 가정해도 아마도 지금쯤 안드로메다를 통과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구에 도달하려면 6,000억년은 더 기다려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짜 종교에 현혹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제가 보이는 우상을 많이 소개해드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상 많습니다. 돈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권력, 명예도 될 수 있습니다. 쾌락, 탐심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영어로 아이돌(idol)입니다. 연예인 아이돌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네모 상자 화면 안에 뭐가 그리 재미있는 것이 있는지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갑니다.” 이러면 구세대 인 것이죠? 취미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여간 하나님 대신 마음 첫자리를 차지하면 우상이 됩니다.

첫째 재앙(7:14-25) : 피

본문으로 가 10 재앙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첫째 재앙(7:14-25) : 피 재앙입니다. 애굽의 생명의 젖줄이라고 하는 나일강은 길이가 6,700km로 세계에서 가장 깁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이 물을 치자 피로 변합니다. 고기 신들이 죽고 악취가 났습니다. (출7:18) 출7:19절을 보면 나일강뿐 아니라 연못, 호수, 물을 담는 그릇들의 물도 다 피로 변합니다. 온통 피바다가 됩니다. 애굽 사람들은 특히 피를 혐오합니다. 바로 왕은 아침 마다 강을 숭배하기 위하여 나일강에 갔습니다. 그런데 나일강 신이 화가 난 것 같이 다 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피 재앙을 통해서 생명의 젖줄은 나일강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둘째 재앙(8:1-15) : 개구리

둘째 재앙(8:1-15) : 개구리 재앙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개구리를 보약으로 많이 잡아 먹었습니다. 잡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른 봄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입이 떨어지기 전에 잡아야합니다. 개구리 입이 떨어지면 먹이를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약효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얼음을 깨고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글쎄요! 약효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종합병원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개구리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왕성한 번식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신들이 갑자기 물에서 기어올라 와 날뛰기 시작합니다. 또 집단 폐사합니다. 이 재앙은 개구리 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셋째 재앙(8:16-19) : 이(lice)

셋째 재앙(8:16-19) : 이(lice)재앙 입니다. 애굽의 이는 우리가 과거 잡은 이가 아니고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각다귀(Gnat)라고 하는데 물리면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며 종기와 통증을 가져옵니다. 출8:17보면 땅에 티끌로 이 해충을 만들었습니다. 이 재앙은 이들이 섬겼던 땅 신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나일강 하류로는 매년 범람하면서 비옥한 토양을 실어다 줍니다. 이 땅을 일구어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땅이 이들에게 재앙을 주었습니다. 이 재앙은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란 메시지를 전달하신 것입니다.

넷째 재앙(8:20-32) : 파리

넷째 재앙(8:20-32) : 파리 재앙입니다. 파리 종류도 많습니다. 실험용으로 쓰는 초파리, 금파리도 있습니다. 출8장 24절을 보면 파리가 창궐해서 그들이 소중히 섬겼던 땅이 황폐하게 됩니다. 애굽 땅을 황폐화할 정도의 강한 파리이니 이 파리도 오늘 날 파리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주석은 이 파리는 그들이 우상으로 섬겼던 딱정벌레라고 주장합니다.

이집트 고대 벽화에 여인들 그림을 보면 눈 주위에 까맣게 아이쉐도우 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귀찮게 달라붙은 파리를 쫓기 위한 치장이라고 합니다. 파리를 쫓기 위한 치장이 여성의 색조 화장의 원조라고 합니다.

다섯째 재앙(9:1-7) : 악질

다섯째 재앙(9:1-7) : 악질 재앙입니다. 이 재앙으로 이들이 우상으로 섬겼던 소 신, 양 신, 염소 신들이 오늘 날 구제역에 걸린 가축처럼 쓰러져 죽었습니다. 가축은 부와 행복의 상징입니다. 부와 행복도 근원이 가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란 걸 보여 주신 재앙이었습니다.

여섯째 재앙(9:8-12) : 종기

여섯째 재앙(9:8-12) : 종기 재앙입니다. 모세가 풀무의 재를 날려서 종기를 발생시켰습니다. 악성 종기는 극심한 가려움을 동반합니다. 피부가 불에 탄 듯 붉게 부풀어 오릅니다. 그리고 무섭게 온몸으로 퍼집니다.(신28:27) 본문 출9:11절을 보면 요술사들에게도 종기가 생겼습니다. 요술사들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정결한 몸을 유지합니다. 화덕의 재를 뿌리면서 주술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짐승이나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것을 대행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뿌린 재가 악성 종기를 일으켰고, 부정한 몸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술 행위를 못 하였습니다. 종기는 우상숭배의 최 일선에 있었던 주술사들에 대한 심판을 보여줍니다.

일곱째 재앙(9:13-35) : 우박

일곱째 재앙(9:13-35) : 우박입니다. 우박과 함께 천둥, 번개, 맹렬한 불을 동반합니다. 역대 가장 큰 우박 곧 수퍼 우박은 언제 떨어졌는지 찾아보았습니다. 1970년 9월 3일, 미국 캔자스주에 떨어졌습니다. 우박이 아니라 호박 수준입니다. 둘레가 44.5cm입니다. 이런 우박은 아파트도 구명 낼 것 같습니다. 출9:23,24절을 보면 모세가 하늘로 지팡이를 들자 우박이 내렸습니다. 천둥, 번개도 동반합니다. 불도 함께 내렸습니다. 불과 우박은 상극인데 같이 내렸습니다. 우박재앙으로 애굽 전역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애굽의 경제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여덟째 재앙(10:1-20) : 메뚜기

여덟째 재앙(10:1-20) : 메뚜기 재앙입니다. 메뚜기도 이들은 신으로 섬겼습니다. 출10:13절을 보면 동풍으로 메뚜기를 모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지형상 남풍이나 서풍밖에 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거꾸로 일으켜 우연을 다 차단합니다.

요즈음 믿지 않는 과학자들이 10 재앙을 자연스러운 자연 재앙으로 해석하여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차단한 것입니다. 10 재앙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으로 일어난 초자연적인 재앙입니다. 우박 재앙으로 처리 못한 채소, 나무 열매를 황폐화합니다.

아홉째 재앙(10:21-29) : 흑암

아홉째 재앙(10:21-29) : 흑암 재앙입니다. 이들이 섬긴 최고의 신은 태양 신입니다. 바로 왕은 바로 이 태양 신의 후계자를 자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태양 신의 눈을 완전히 가려버린 것입니다. 3일 동안 빛 한 톨 없었습니다.

마지막 열째 재앙(11:1-12:36) 장자

마지막 열째 재앙(11:1-12:36)이 장자들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들은 바로 자신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신으로까지 높였는데 그 신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바로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모든 장자가 같이 죽었습니다.(출11:6) 가축들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바로 왕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10 재앙을 통하여 생명의 젖줄은 나일강이 아니며, 풍요는 개구리가 주지 않으며, 이 땅의 주인은 이도 아니며, 부와 행복의 근원도 가축이 아님을 보입니다. 세상과 인생의 주인은 우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왕과 백성들은 재앙을 통하여 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10 재앙을 일으킨 재료들을 보면 다 개구리, 파리, 이, 메뚜기, 세균 등 작은 미물들입니다. 왜 사자, 표범,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맹수들을 쓰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좀 더 스릴(thrill) 있고 스펙터클(spectacle)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디스트(sadist)가 아닙니다. 재앙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또 하찮은 미물을 써야 그 권능의 엄위함이 더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뭐든지 적당하면 좋은데 차고 넘치면 재앙이 됩니다. 재앙으로 쓰인 한 마리 한 마리는 작았지만 차고 넘치자 재앙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명령하자 미물까지도 순종하여 따랐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특히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죽음 앞에 불멸의 미이라나, 불가사의 피라미드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3,000년을 유지한 대제국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실존 앞에 설 것입니다. 이 앞에서 움켜잡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사람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밖에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늘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해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불꽃같은 그분의 눈을 인식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7장1절은 하나님은 10 재앙을 내릴 때 철저하게 모세 한 사람과만 말합니다. 모세 한 사람만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 사건으로 80살 늙은 양치기에 불과했던 모세가 애굽과 이스라엘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높아졌습니다. 모세는 애굽 공주 양자 출신입니다. 그는 40년 동안 애굽 궁전에서 최고 선진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교육을 마쳤을 때가 지도자로 쓰임 받기에 최적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살인자 신세로 광야로 도망치는 자가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40년 미디안에서 양치기로 세월을 보냅니다. 80이 되자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웁니다. 자기는 말더듬이라고 주장하자 대변인 형 아론까지 붙여줍니다. 40세의 모세와 80세의 모세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민수기 12:3은 80세의 모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잘난 40세의 모세는 하나님이 쓸 수 없었습니다. 80이 되어서 마음이 많이 낮아지고 온유해졌을 때 하나님이 썼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우수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7장7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작아서, 가장 약해서, 가장 힘이 없어서 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는다는 것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고전1:28-29)

오늘 10 재앙의 정점은 마지막 재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았겠습니까? 애굽 백성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십보백보입니다. 이스라엘도 우상과 죄로 인해 장자 재앙을 피해 갈 수 없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특권입니다. 마지막 장자 재앙을 면할 수 있었던 방법은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뽑아 문설 주에 바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집의 피를 보고 “장자가 죽어야 마땅한데 이미 어린양이 대신 죽었구나.”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입니다.

오늘날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피는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입니다. 죄로 죽어야 할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죽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감독이 무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면 연극은 끝났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또 한 번 올 것입니다. 그때는 만천하가 알게 공개적으로 옵니다. 이때 어린양의 피를 믿은 자들은 심판에서 안전합니다.

얼어떻게 안전합니까? 오늘 본문인 출11:7에 있습니다. 같이 읽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본문은 안전함을 개의 혀를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개 한 마리의 혀도 움직일 필요가 없이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비유입니다. 개 코는 사람코 보다 400배, 개귀는 사람귀보다 1000배 더 좋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옆에서 뭔가 바스락 거려도 개는 혀를 움직여 짖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심으로 이런 바스락할 거리도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방패되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저의 메시지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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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강해(출애굽기 20:1-17)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백성에서 광야로 나온 후 3개월째 시내산 앞 광야에서 받습니다. 이들에게는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오늘은 10가지 계명과 그 의미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십계명은 2가지가 ~하라 8가지 가 ~하지 말라입니다. 8할이 부정적입니다. 왜 그렇까요? 2절입니다. 십계명을 받는 시점이 언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다다랐을 때 입니다. 그들은 430년 동안 비참하게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 나온 후입니다. 신분이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꾸었습니다.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받은 특권을 유지하도록 계명을 주셔서 하지 말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본문은 계명을 어겼을 시 20년 이하의 징역 처한다. 천 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한다는 징벌이 없습니다. 형법 조문처럼 여기지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꾸중 할 때 심한 말을 합니다. “게임 계속하면 쫓아 낼꺼야!~” 옛날에는공부 안하고 밖으로 돌아 다닌다고 욕먹었는데 요즈음은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면 칭찬합니다. 자녀에게 경고는 하지만 진짜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잘하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로서 당연한 요구요 권리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좀 더 잘하라는 뜻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

첫째와 둘째 계명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죠. 5절에서는 하나님이 질투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형상으로 대체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속이 통하고 눈물과 피가 있는 관계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앎은 인격대 인격의 만남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살아서 늘 함께하는 하나님이 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셋쩨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입니다. 망령은[妄靈, misuse, godless]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경스럽고 모독적인 말과 행동입니다. 사람들은 황당한 일을 당할 때 “오 마이갓!” “맙소사!”란 말을 씁니다. 맙소사는 신이여 그리 마옵소서란 뜻입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 저에게 정말 이러시깁니까하고 원망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 몹시 분노하고 안색이 변합니다. 또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하고 하나님께 대드는 모습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항상 선합니다. 하나님은 불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찬송 받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찬송이 제사보다 낫다(시69:30-31)란 말씀도 있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주저주저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우리가 잘 참지 못할 때가 자존심 상할 때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칩니다. 자존심은 쫀쫀한 마음입니다. 이 쫀심 때문에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합니다. 쫀심 구겨 질까봐 하나님을 마음껏 높이지 못합니다.

다윗 왕을 배워야합니다. 삼하6:14-16절을 참고하면 다윗은 언약궤가 돌아올 때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춥니다. 특별한 의상을 입고 어린아이같이 뛰놀며 춤을 춥니다. 일명 다윗왕의 막춤사건입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업신여깁니다. 다윗이 왕의 자존심 왕심을 내세웠다면 막춤을 출 수 없었겠죠? 하나님의 이름이 높혀 진다면 나야 어떤 모양이 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니 높이지는 못하더라도 이름에 누는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증축하는 문제도 건축법을 잘 지켜 선한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차를 운행할 때도 교통법을 잘 지켜야합니다. 교회 이름 달고 욕먹이면 안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

다음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는 안식을 누리라는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라고 합니다.(마1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막2:27) 안식일이 사람에게 종속되지 사람이 안식일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신앙 형식에 종속되기 쉽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계명지킴이 의가 되어 다른을 정죄해도 안됩니다. 안식일 목적은 예수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관용적이 되고 풍성해지는데 있습니다. (마11:28-30)

부모를 공경하라

다음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는 질서를 지키라와 같습니다. 신앙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덕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죠. 악한 정부도 무정부 보다는 낫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에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하도록 합니다. (롬13:1, 벧전2:13-17)

사사기에서 한 말씀 인용하면 사17:6입니다. “그 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21:25) 사사시대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시대입니다. 속된말로 지 멋대로 한 시대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부모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걱정 합니다. 그러자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사회의 질서도 위협 받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그냥 두면 무질서한 쪽으로 진행합니다. 방청소를 하지 않으면 계속 더러워지는 원리입니다. 전문용어로는 열역학 제2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무질서도가 감소하는 쪽으로 창조합니다. 질서를 세워 갑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우리 자녀들의 교육도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망하는 길로 갑니다. 이런 인생은 나침판 없이 항해함이요 배에 키가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음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나침판과 키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나침판이요 키입니다.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어떤 분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반대로 질서의 하나님을 신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살인하지 말라

다음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생명을 함부로 해하지 않도록 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5:22에서 형제에게 욕해도 마음으로 살인했다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환경과 배경과 직업과 성격을 가진 분들이 모입니다. 의견 충돌 있기 쉽습니다.

2,400년 전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기질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합니다. 다혈질, 담즘질, 우울질, 점액질입니다. 다혈질 [多血質, sanguine]은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베드로입니다. 담즙질 [膽汁質, cholerikier]-자립심이 강하고 매우 진취적인 성향입니다. 모세입니다. 우울질(憂鬱質amelancholic)신중하고 민감하며 일반적으로 예술 분야에 뛰어난 성향입니다. 성경인물로는 바울입니다. 점액질 [粘液質, phlegmatic person]은 흥분하거나 격분하는 일이 적고, 활발하지 못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의지가 강하고 인내력이 있습니다. 점액질은 아브라함입니다. 저는 우울, 점액질입니다. 소심하고 속으로 칼을 가는 스타일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기질을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르고 성격도 다양합니다. 저분이 나한테 이럴 수 있나? 네 있습니다. 저럴 수가있나? 네 저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엡4:3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롬15:1을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서로 용서하고 약점을 담당하라 합니다. 우울질은 다혈질이 이해 안갑니다. 왜 그렇게 말이 많냐? 입만 가지고 사냐? 하고 도끼눈을 뜨고 보기 쉽습니다. 다혈질이 볼 때는 점액질이 이해가 안됩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드라이해! 왜 그렇게 느려!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코리안 타임에 대하여 예를 듭니다. 이는 정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고 경제가 발달할수록 규격화, 표준화하고 시간이 중요해졌습니다. 교회에서 행사를 하거나 외부로 떠날 때 항상 늦는 분들있습니다. 이것 못참는 분 많습니다. 우리는 농경사회 문화였습니다. 점심 먹고 놀러 깔게 하면 낮12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만 가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시간을 나노 단위까지 쪼갭니다. 그렇더라도 교회는 판단하지 말고 기다려줘야합니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해야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합니다. 성경 한권만 주어도 되는데 66권을 준 하나님입니다. 쌍둥이도 다릅니다.

간음하지 말라

다음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예수님은 마5:27-28에서 마음에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으로 규정합니다. 이런 마음은 상대방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쾌락의 대상으로만 봅니다. 요즈음은 간통죄도 없어지고 동성부부도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성도들은 더욱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겠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다음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남의 집 담을 넘지 않더라도 마음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삼하5:6에 보면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고 합니다. 결국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합니다. 우리도 교사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린성도들이 하나님께 가도록 또 예수님께 가도록 적극도와야 합니다. 자기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이 되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지적재산권이 강화되었습니다. 대학 도 매년 협회에 천 여 만원 씩 저작권료를 지불합니다. 학생들이 책을 복사하거나 인용하는 부분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저작권료를 냅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CTRL-C와 CTRL-V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남의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습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를 CTRL-C와 CTRL-V 키 몇 번만 사용하면 책도 한권 만듭니다. 논문도 씁니다.저도 강의안 준비하며 CTRL-C와 CTRL-V 사용하여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낮에는 직장 일하고 오후에만 짬짬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럴 때는 CTRL-C와 CTRL-V 키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십계명인데요. 인터넷 검색엔진에 십계명이라고 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집니다. CTRL-C와 CTRL-V로 만들어진 강의는 나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또 하나님께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꼭 인용을 해야 한다면 정확히 출처를 밝히는 것이 도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무형의 재산도 무단 사용하면 도둑질이 성립합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다음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우리에게는 과장된 영적인 무용담을 경계해야합니다. “한 선교사가 오지에 선교를 떠납니다. 그곳은 곰이 많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곰이 쫓아와 선교사의 발을 잡고 1미터 정도를 끌고 갔답니다. 선교사가 본국으로 돌아와 선교 보고를 하는데, 처음에는 1미터 끌려갔다고 간증합니다. 그다음에는 1미터가 5미터가 되고 다음은 10미터 또 20미터로 점점 들어납니다. 선교사는 자신의 간증이 과장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서 회개했답니다. 사단은 인간의 탐심을 자극해 없었던 일을 덧 붙여서 극적인 효과를 노리게 만듭니다.

탐내지 말라

끝으로 탐내지 말라입니다. 탐심은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지 못함에서 옵니다. 빌4:11에 사도바울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둘 때 탐심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열매를 맺어서 신앙인격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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