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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기독교정보

“감추어진 것과 맡겨진 것”(신명기 29장 29절)

by 명주(明珠) 2025. 12. 14.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늘 ‘왜’를 묻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까?”
“왜 저 사람은 잘되는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가만히 계십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불신앙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붙들려서, 정작 ‘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29장 29절은  많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어 주신 명확한 신앙의 경계선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가나안 입성 직전, 모세가 죽기 전 백성에게 전한 마지막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광야에서 불순종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기적과 심판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왜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을까?”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단 한 문장으로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했고, 나타난 일은 너희에게 속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침묵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질서를 바로 세우시는 말씀입니다.본문에서 말하는 감추어진 일이란,
"하나님의 섭리 전체, 고난의 모든 이유? 왜 지금 이 길을 가게 하셨는지?, 왜 이 시점인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이해 영역을 넘어섭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숨기실 권리가 있으신 분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셔야만 하는 분이라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고 의무가 있는 상사입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모든 원리와 미래까지 설명하지 않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감추십니다.

본문은 이어서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히 말씀하신 것, 옳고 그름, 정직, 사랑, 순종, 경외"를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논의’하거나 ‘협상’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왜를 다 알게 해 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말해 주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을 선택하는 결단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가만히 돌아보면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지만, 순종은 미루고 있습니다. 질문은 많지만, 실천은 적습니다. 설명은 요구하지만, 결단은 회피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 "정직하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말씀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모르는 것을 캐묻기 전에, 이미 아는 것을 행하고 있느냐?”

질문보다 순종이 먼저입니다
이 말씀이 질문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질문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미루기 위한 질문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신명기 29장 29절의 최종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은 신약에서 더 분명하게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고난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알 수 없으나, 후에는 알게 되리라” (요한복음 13:7)

신앙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순종으로 걷는 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려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이미 주신 말씀을 붙드는 성도, 이해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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