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교훈(룻기1:1-20강해)
오늘 내용은 “룻의 믿음”입니다. 우리말도 히브리어 처럼 “점”을 잘 찍어야 합니다. “점”하나 잘못 찍으면 룻이 롯이 됩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선택하여 살다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이죠? 룻은 그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SBS TV드라마에 [펀치] 내용을 인용합니다. 남자 주인공이 뇌종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에 정답이 있나? 오로지 선택만 있을 뿐이지!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의 댓가를 지금 받는 것이야!” 저는 드라마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봐야해서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톡톡 튀는 대사가 많고 연기력이 좋았습니다. 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 듯한 표정 연기는 압권입니다. “이젠 그만 본다!” 하면서 마지막 회까지 봤습니다.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그 댓가를 지금 받는 거야!” 대사처럼 오늘 말씀도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였느냐에 따라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압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며 또 그 선택이 올바른 선택인가를 한 번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나오미 가족의 비극]
룻기 1장1~5절을 참고하면 본문은 짧지만 한 가족이 10년 동안 겪은 비극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때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타락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복되던 시대입니다. 연대적으로는 BC1,050~970년대 입니다. 이들이 살던 곳은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이곳에 극심한 흉년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흉년이 들게합니다.(왕상 17:1; 18:18) 흉년이 길어지자 엘리멜렉은 중대한 선택을 합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 땅 모압으로 향합니다.
당시 모압은 사해 동쪽의 고원지대여서 흉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입니다. 물이 풍부했고 땅이 기름졌고 아열대성 작물이 자랐습니다. 반면 영적으로는 황폐한 지역입니다. 모압의 대표적 우상은 그모스와 바알브올입니다. 그모스는 신전에서 정결 의식으로 자식을 제물로 바쳤고 또 불 가운데로 지나게했습니다. 또 바알브올은 신전에서 여사제와의 음란한 제사 의식을 행했습니다.
나오미 가족의 이름 뜻을 보며 가족 상황을 짐작해봅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다”입니다. 이름은 경건한 가정으로 추측합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 늘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나오미는 “나의 기쁨”입니다. 이는 그 부모가 하나님이 귀한 자녀를 주셔서 기뻤다는 뜻입니다. 두 아들 중 첫째인 말론은 “병약한”입니다. 그는 이름대로 어려서 병으로 요절합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기룐으로 “수척한”입니다. 그도 금방 수척해져 형의 뒤를 따릅니다.
[에브랏을 떠나기로 선택한 이유]
본문 2절을 보면 이들이 살던 곳은 에브랏입니다. 에브랏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모압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본문에 없으니까 상황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이들은 떡집을 해서 큰 돈을 벌 수도 있었겠죠. 요즈음 떡집 옛날 방앗간 수준을 넘어섭니다. 떡카페를 열어 떡과 차를 같이 팝니다. 떡도 차별화합니다. 현대인의 입맛에 맛게 “카스테라인절미” “찰떡와플”를 개발했습니다. 이들이 부를 많이 축적해서 더 많은 부를 위해 이민을 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업이 망해서 자구책으로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두 명의 아들들이 병약하게 태어나서 의료체계가 잘 된 선진국행을 택했을 수도 있었겠죠. 이쨌든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족의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약속의 땅이 가나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3절에 보면 이방인들과 혼인을 율법으로 금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을 무시하고 어떤 선택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방여인 오르바와 룻을 가족으로 들입니다. 말론과 기룐이 결혼한 시기는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로 추측합니다. 나오미 편에서 보면 남편을 잃고 가정을 제대로 꾸려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두 여인의 이름의 뜻을 보면 오르바는 “완고한”이고 룻은 “친구”입니다. 두 여인의 운명도 기구합니다. 결혼 하자 마자 남편을 잃습니다.(5)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인들이 혼자 남는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나오미는 남편에 아들까지 모두 잃었으니 하늘이 세 번 무너지는 느낌이었겠죠.
본문 6절부터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세 여인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 전개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오미는 고향에서 온 희소식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다시 풍년이 들게한 소식입니다. 나오미는 이에 고향으로 돌아가갈 결심을 합니다. 나오미는 서둘러 짐 정리를 했고 두며느리도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7)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가는 룻]
국경 지역에 다다른 나오미는 오는 내내 망설였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오르바와 룻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합니다. 두 여인이 이방땅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이라면 개와 돼지 취급하는 땅입니다. 남편도 없는 이들이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나오미는 아직 젊은 오르바와 룻이 자기들 땅으로 돌아가 재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도록 합니다.(9) 이런 나오미의 속 깊은 뜻을 안 오르바와 룻은 소리 높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오르바와 룻의 입장에서는 늙은 시어미 혼자 돌려보내는 일도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둘 다 떠나지 않습니다. (10)
11절을 보십시오. 나오미는 더 합리적으로 설득합니다. 당시 율법은 형이 죽으면 동생이 대를 이었습니다. 신명기 25:5-6에 수혼제도입니다. 그런데 동생마저 죽었으니 이제 늙은 나오미가 결혼하여 다시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불가능합니다. 또 결혼한다고 가정해도 클려면 수십년이 걸립니다.(12-13)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이 이런 현실에 눈을 뜨도록 설득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설득했습니다. 오르바는 눈물을 머금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문에서는 자신이 옛날에 섬기던 신에게로 돌아갔다합니다. 그런데 룻의 마음은 돌리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룻이 “붙좇았더라.”란 표현은 “매달렸더라.”라는 뜻으로 영어로 Clung to her입니다. 룻은 비록 자신이 가정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는 이번에는 혼자 남은 룻을 한 번 더 설득하려고 동서가 자기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돌아갔으니 룻도 따라 돌아가라합니다.(15)
오르바 때문에 룻은 마음이 흔들리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16,17참고합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붙은 이유는 결국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 때문입니다. 룻은 자신이 과거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선 여인입니다. 죽기 전에는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 결심합니다.
룻은 나오미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룻의 문제는 우상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룻의 믿음은 환경이 어렵고 고난의 때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룻의 마음을 안 나오미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습니다.(18) 두 사람은 긴 여행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약120키로의 여행입니다. 당시 성읍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보고 떠들썩합니다.(19) 본문에서 “성읍”은 124개 이상 큰 지역을 말합니다.(수 15:21~62). 왜 떠들썩 했을까요? 금의환향하겠다고 호언장담 하고 떠나더니 거지꼴로 돌아왔다고 비난하는 사람있었을 것입니다. 남편 아들 다 잃고 이방 며느니 딸랑 데리고 온 나오미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오다]
20,21절을 보십시오. 나오미의 쓰라린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21)입니다. 두 마디가 그의 인생의 고난과 아픔을 대변해 줍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개명을 합니다. 보통 개명을 하면 그전 이름보다 좋은 이름으로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반대로 자신을 마라 즉 쓰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씁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기로 선택한 그 댓가는 쓰디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쓰라린 인생이었지만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로 선택한 결과는 어떠합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돌아오기로 선택한 이들에게 희망을 말합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룻이라는 믿음의 여인을 얻었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복음역사는 사람을 얻는 역사입니다. 나오미는 나중에 룻은 아들 일곱 명보다 더 낫다고 고백합니다.(룻4:15) 두 번째는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여서 희망이 있습니다. 이들이 나갈 때는 보리 한 톨 구하기 어려운 흉년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풍년이 되었고 먹을 것이 넉넉한 때입니다. 나오미의 쓴 인생은 가고 이제 희망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선택의 중요성]
<어느민족 누구게나>란 새찬 송가 가사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 오는 그날까지 서리라!”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따라 살아 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서 항상 지켜 주시리” 나오미의 모압 행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약속의 땅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은 잘한 선택입니다. 룻은 우상에게로 가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이 선택의 결과 룻은 자기 이름을 딴 구약성경을 남깁니다. 또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 여인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우리도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본문의 룻과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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